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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이당이라 하면 둘이 없는 집 이란 뜻이로군. 무심코 그 액자에 덧글 0 | 조회 5,442 | 2021-04-14 17:32:53
서동연  
무이당이라 하면 둘이 없는 집 이란 뜻이로군. 무심코 그 액자에 쓰인 글자의 뜻을 풀이하다 말고 나는 마음의 충격을 느꼈다. 저 글자를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둘이 없는 집 이란 뜻의 저 글자를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저 글자 밑에 달필로 휘갈겨 내려간 글씨도 어디선가 본 적이 있어 낯이 익다.도둑질하지 말 것이 염주를 법명 스님에게 드리겠습니다.그리고 나서 만화는 우물정자 모양의 간살에 버티고 서서 주위의 여러 대중을 돌아보고 말하였다.눈과 귀의 보고 들음 끊어졌는데백장의 입적 연도는 814년으로 분명하지만 출생 연도는 불분명하여 어떤 책에서는 720년이라 하고, 어떤 책에서는 749년이라 하는데 어쨌든 95세의 늙은 나이였음에도 언제나 밭을 갈고 김을 매는 노동일에 전념하여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다.깊고도 총총하나 막힘이 없네화가 난 마보사가 사람을 시켜 다섯 방망이를 때리게 하니 보화가 물러가면서 말하였다.내가 천도재를 올려도 좋다고 말하기도 전에 이미 아내는 절에서 불공을 드리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아내는 어머니의 장례식 때 찾아와 독경을 해주었던 스님을 통하여 어머니가 우리도 모르게 사십여년 동안 절 하나를 택하여 그 절과 인연을 맺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고, 그렇다면 어머니의 넋을 달래는 천도재는 마땅히 그 절에서 올려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더욱이 부근에는 섬까지의 바다를 메워 제방을 쌓고 거대한 육지를 만드는 간척 사업이 벌어지고 있어 작은 항구에는 외지에서 몰려든 인부들을 상대로 하는 술집들도 형성되어 있었다.그렇다면 나는 서산의 말처럼 이 문 없는 문의 길로 나서서 무 자를 결택할 것인가, 이 무자로 사람의 몸과 목숨을 내던질 자리로 삼을 것인가.마조가 입적할 때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다.백장이 뺨을 얻어맞고 읊은 이 말구 하나는 음미할 만하다.과연 내가 머무를 곳이 북방에 있을까요.나는 팔짱을 끼고 홀로 서 있었다.바로 그 마루의 바로 그 처마 밑, 바로 그 제비집 속의 제비 들이었다.동자가 인도하는 대로 나는 당 앞에 나아가
마조의 예언은 적중하여 그대로 되었다. 서당은 경전의 으뜸이 되었고, 백장은 선문을 크게 일으켜 수많은 제자를 키웠으며, 남전은 이 모든 것에 초연하여 고불 하나를 키웠음이다.정식 명칭으로 구자무불성 화두로 일컬어지는 조주의 이 무자화두 가 나오게 된 유래는 다음과 같다.내가 그대를 위해 장삼 하나를 만들어놓았소.너댓 명의 어부들은 술이 한껏 취해 있었다. 그들이 한 배 가득 실어왔던 생선들이 부두에 출하한 즉시 좋은 시세로 모두 팔려 한껏 기분들이 좋은 모양이었다.생사가 눈앞에 다가왔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제발 자비를 베푸시어 저의 남은 목숨을 구해 주십시오.스님은 내 빈잔에 다시 차를 따랐다. 나는 이미 충분히 마셨지만 사양하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이 세상천지에 아프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이 세상에 티어난 만물 중에 병들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기 자신이 주체가 되어 무소의 뿔처럼 당당하게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생활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모든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주인공이 되지 못하고 물질고, 탐욕과, 쾌락의 노예가 되어버리는 것이지요. 그래서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하고 물질과 욕망의 대리인생을 사는 것이지요. 말하자면 남의 일생을 대신 살아주고 있는 노예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열반에 들기 석달 전에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깁니다.그해 정월 마조는 건창의 석문산에 올랐다. 숲속을 거닐다가 동굴어 허물어져 평평해진 것을 보고 시자에게 말하였다.남악 회양의 문하에서 태어난 말 한 마리. 마ㅆ 성을 가진 조사 마조도일이야말로 혜능이 일찍이 표현하였던 대로 천하의 모든 사람들을 미친 말 발굽으로 짓밟아 죽여버린 선걸인 것이다.지장 선사는 스님의 심지가 굳음을 미루어 법기임을 알고 은밀히 심인을 전하여 주었다. 그로부터 스님은 행각의 길에 나서 전국을 두루 돌아다녔으며 25년 만에 신라로 돌아와 전남 곡성군 태안사에서 머물러 석장을 내걸었다.경허의 방 앞에 내걸린 나무 팻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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